로그인


글작성자 랭킹!

  • 1위.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5440회
  • 2위. [레벨:3]id: 2인자범이2인자범이
    43회
  • 3위. [레벨:1]id: 도너츠도너츠
    20회
  • 4위. [레벨:2]id: 송시송시
    10회
  • 5위. [레벨:1]id: 돌핀돌핀
    6회


댓글 작성자 랭킹!

  • 1위.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496회
  • 2위. [레벨:3]id: 2인자범이2인자범이
    36회
  • 3위. [레벨:1]id: 도너츠도너츠
    26회
  • 4위. [레벨:2]id: 송시송시
    12회
  • 5위. [레벨:1]id: 매맞는아이매맞는아이
    7회


방문자수

전체 : 1,193,416
오늘 : 145
어제 : 296

페이지뷰

전체 : 33,572,941
오늘 : 592
어제 : 1,785

댓글 0조회 수 8995추천 수 0
?

단축키

이전 문서

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이전 문서

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http://kimchangkyu.tistory.com/545 글에대한 반박자료라고 합니다. 


박정희가 혈서를 쓰고 일본군 장교가 되었다는 허위사실이 유포되고 있고 일부 우파들도 혈서는 사실이라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어 이것을 정리하는 글을 작성한다.

 

1.박정희는 일본군 장교?

박정희는 만주국 군관이었다. 만주국은 엄연한 독립국이었다.

박정희는 알려진바와 같이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한 것이 아니라, 만주국 신경군관학교에 입학하였고, 그 후 일본 육군사관학교 본과 3학년에 편입하였다. 일년간 포병교육을 받았다. 그후 만주국 보병 소위로 임관하였다.

 

여기서 일본의 인명사전을 살펴보자


일본인명.png


중앙의 19-7 옆에 '만주국군 소위' 라고 표기 된것을 볼수 있다.  

일본군이었다면 자국군이라고 표기했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박정희를 만주국 군인으로 보는 것이다.

일부 무지몽매한 대한민국 사람들이 박정희가 일본군이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

 

박정희는 유학생이었으며 유학생은 일본군 장교가 될 수 없었다.  박정희는 1954년에 미국 육사에 입학하였다.

포병학교 과정을 배웠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미군장교이거나 미군인가?

많은 한국군 장교들이 미국 육사에 유학을 다녀오는 실정이다.

 

1940년대의 일본 육사 유학생들은 유학생반에서 따로 교육을 받았고 일본육군 사관생도복을 입지도 않았다.

 

다음은 민주국군 소위 시절 박정희의 사진이다.



만주국군.png


당시의 조선인 학도병은 일본군 군복을 입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일본군 군복을 입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만주국군은 일본의 황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주국군은 누구도 일본천황에게 충성맹세를 하지 않았다.(경성과 평양 훈련소에 입소한 자들(예:신상묵)이 천황폐하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따라서 친일 혈서라는 것 자체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2. 신경군관학교의 설립일

만주국군간행위원회(滿洲國軍刊行委員會)와 난성회(蘭星會)가 1970년에 발간한 <滿洲國軍> 910페이지에는 1939년 3월 10일 육군군관학교령이 재가, 공포되고 4월에 신경군관학교가 설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 합참의장 장창국의 <육사졸업생> 18 페이지에는 “만주군관학교는 1939년 장춘(신경)에 세워진 4년제 사관학교다.”라고 분명하게 기술되어 있다. 박정희 친일 추적에 전력 투구했던 오마이뉴스 정운현 기자의 책 <실록 군인 박정희>의 88페이지에도 “신경군관학교는 봉천군관학교의 후신으로 1939년 수도인 신경에 세워진 정식 4년제 사관학교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3. 민족문제 연구소의 허위사실 제기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는 박정희가 친일 행위를 했다는 증거로 그가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기 위하여 일본 천황에게 썼다는 혈서 지원 관련 기사를 공개하였었다. 그 기사는 1939년 3월 31일 자 '만주일보'에 실린 기사라고 하였다.



만주신문1.png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血書▶◁軍官志願

 

半島の若き訓導から

二十九日治安部軍政司徵募課へ朝鮮慶尙北道聞慶西部公立小學校訓導朴正熙君(二三)より熱烈なる軍官志願の手

紙が戶籍騰本、履歷書、敎練檢定合格證明書とともに"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と血書した半紙を封入、書留

で送付されて捅く係員を感激せしめた、同封の手紙には

(前略)

日系軍官募集要綱を拜讀しますと小生は凡ての條件に不適合の樣であります。甚だ僭濫にて恐懼の至と存じます

けれども御無理を申しあげて是非國軍に御採用下さいませんてせうか

(中略)

日本人として恥ちざつだけの精神と氣魄とを以て一死御奉公の堅い決心でこざいます。しつかりやります。命の

つゞく限り忠誠を盡す覺悟でこざいます。

(中略)

一人前の滿洲國軍人として滿洲國のため延いては祖國のため何で一身の榮達を欲しませう、滅私奉公、犬馬の忠

を盡す決心でこざいます

(後略)

とペンで達筆に認めてあり同君の軍官志願の手紙はこれで二度目であるが軍官なるには軍籍のある者に限られて

をり、軍官學校へ入れるにしても資格年齡十六歲以上十九歲であるため二十三歲では年が多過ぎるので同君には

氣の毒ではあるが鄭重に謝絶することになつた=寫眞 朴君

 

혈서(血書)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계원(係員)을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同君)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滿洲新聞』1939.3.31. 7면)

 

3. 혈서는 존재하는가?

어떤 이해력 부족한 사람들은 혈서가 일본국회도서관에 보관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알고 있는것이다.

2012년 8월 29일에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의 한 사용자가 '박정희 혈서 입대 재인증'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과거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박 전 대통령의 '혈서 지원' 기사가 실린 만주신문 1939년 3월31일자 사본을 공개한 것과 똑같다.  글쓴이가 일본 국회 도서관에 있는 마이크로필름을 직접 촬영한 사진들에 불과하다.


혈서인증.png


바로 위 사진이 그것이다. 2012년 6월 7일에 찍은 사진이다.

즉 혈서를 보았다는 사람도 없고 그에 관한 기록도 없다. 다만 만주신문의 기사내용이 하나 있을 뿐이다.

 

그동안 '박정희 혈서'는 인터넷 상에서 여러 차례 거론됐다. 많은 연구자들이 만주 지역의 대학이나 도서관 등에서 증거를 찾아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박정희 혈서' 내용이 쓰인 만주신문이 만주 지역의 신문이라는 착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주신문은 일본에서 발행되던 지방지다. 연구자들이 오랜 기간 증거를 찾지 못했던 이유다.

 

따라서 2012년 8월에 제기된 문제는 다시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제기한 내용으로 돌아간다.

그럼 민족문제 연구소가 제기한 문제는 왜 허위사실인지 알아보자

 

4. 민족문제 연구소 주장의 허위

1)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기 위하여 일본 천황에게 썼다는 혈서 지원 관련 기사 (1939년 3월)

  박정희는 만주 신경군관학교에 입학할려는 시점이므로 시기가 맞지 않는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는 신경군관학교를 졸업후 1942년 10월에 성적우수자로 편입하였다. 박정희는 39년에 일본육사 입학할 자격도 없었다.

따라서 허위사실이다.

 

2)그 기사는 1939년 3월 31일 자 '만주일보'에 실린 기사라고 하였다.

  만주일보는 1908년에 폐간되었다. 이또한 허위사실이다.


만주일보폐간.png

 

3)민족문제 연구소의 최초주장은 혈서의 내용이 진충보국 멸사봉공 "盡忠報國 滅私奉公" 

 그러나 만주신문’ 기사의 사본을 공개했을 때 일사에 어봉공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 라는 내용만 있었다.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 보답하고, 나를(私) 죽여서 국가를(公) 받들겠다. 라는 뜻으로 그 나라를 일본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일본천왕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뜻으로 쓴 혈서라고 주장했다.

 

만주신문에 있던 혈서내용은 일사에 어봉공"(一死以 テ御奉公)이고 일본어로 '잇시이테오호우코우'로 읽는다. 한번 죽음으로써 충성을 다하겠다, 또는  한 목숨 다바쳐서 충성을 다하겠다. 라고 해석한다. 즉 입학시켜주면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4)만주신문의 기사내용도 조작된 내용이며 사실보도가 아니다.

 ①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 라는 부서가 만주국에 없었다.


군형과.png


박정희가 혈서를 썼다는 1938년 9월 무렵 만주 봉천의 중앙육군훈련처의 군관후보생 모집공고를 보면 치안부 군형과(軍衡課)에서 채용을 공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출한 신문기사의 진위가 또 한번 의심된다 할 수 있겠다. 징모과라는 부서는 있지도 않은 유령부서이며, 징병제를 실시할 무렵에는 정모과(征募課)라는 부서가 존재했었다.

 

치안부가 강덕 4년 7월에 탄생하면서 발표된 분과규정에는 징모과라는 부서는 없었다.정모과 征募課라는 부서가 1939년 12월에 잠깐 존재했다가 사라진 적은 있어도 징모과徵募課라는 부서는 없었던 것이다. 혹자는 征이나 徵이나 같은 글자가 아니냐고 하는 모양인데, 애초에 존립시기가 다른 문제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1938년에는 군형과(軍衡課)에서 원서를 접수했고 1940년에는 훈련과(訓練課)에서 전형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군형과(軍衡課)와 훈련과(訓練課)는 모두 치안부內 참모사(參謨司) 소속부서이다. 만주신문에서는 치안부 군정사 소속 징모과에서 원서를 접수했다고 하는데, 육군군관학교 편제, 운영 담당은 군정사 소관이 아니라 참모사 소관이다.

그런 고로, 이 신문 기사는 허위에 가까운 창작이다.

 

②호적등본은 구비서류가 아니었다.

  본적지 경찰서장이 확인한 신분증명서로 대체하도록 되어 있다.

 

③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계 군관모집요강』이라는 것은 그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계 군관모집요강은 무려 9개월 뒤인 1939년 12월에나 나왔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혈서를 보냈다는 3월 이전에는 일계 학생은 뽑지도 않았고 만계 학생들만 선발했다. 바로 이런 점이 이 신문기사가 소설을 썼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만주 신경군관학교의 일계(日系) 지원자 모집공고는 陸滿秘 공문 제1019호 (昭和 14年 11월 28일자)에 최초로 기안된 사실이 있다. 昭和 14年이면 1939년 11월 28일자였다. 그러므로 39년 3월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39년 12월로 날아가지 않는 이상 일계모집요강을 신문기사에 나오는 박정희가 받아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계" 모집공고는 "일계"와는 구분하여 고시되었다. "일계"는 육군성 대신의 추천을 받은 자들에 대한 무시험 전형이어서 박정희가 받들어 읽을 필요조차도 없다.

 

④첨부한 사진이 박정희?


r1.jpg 


r1_00000.jpg


사진4.png



코망울의 모습이나 눈썹의 모양, 머리가 여자의 단발머리스타일이라는 점 등을 비교해볼수 있다.
사진조차도 박정희와는 다른 사람임을 알수 있다.

 

5) 만주 신경군관학교 지원 시기의 문제

강덕6년(1939년) 8월에 기안된 만주군관학교예과생도 모집책자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생겼다. 박정희는 이 책자를 보고, 그해 10월에 시험을 쳐서 합격하고 1940년 4월에 2기생으로 입교한다.


모집책.png


  1939. 8    모집요강 기안

  1939. 10  모집 시험에 응시

  1940. 4.   신경군관학교 예과 입학

  1942. 3    우등생으로 졸업, 만주국 황제 푸이가 하사하는 금장시계를 은사상으로 받음

  1942. 10  성적 우수자로서 일본 육군사관학교 본과 3학년에 편입

  1944. 4    일본 육사 제57기와 함께 졸업

  1944. 12  만주국군 보병 소위로 임관

  1945. 7   만주국군 중위로 진급

 

* 1938년 10월 1기 모집 시험

  1939년 2월 24일 합격자 발표

  1939년 3월 29일 만주신문 기사 내용에 있는 문서 도착

 

 따라서 1기 시험에 응시했다고 해도 합격자 발표 이후의 응시서류 도착이고 1기 시험인데 2번째 도전이라고 했으니 기사내용이 허위이다. 2기 시험에 응시할 서류라면 서류접수 자체가 안되는 시기였다. 그해 8월에야 모집요강이 나갔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은 합격자 발표가 2월 24일이었다는 내용이다.


합격발표.png


 이런 연유로 2008년도에 이 혈서 문제는 근거없는 일로 사장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조갑제가 주장한 혈서 내용이다. 조갑제가 주장하였다하여 무조건 맹신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조갑제는 5.18에 대해서도 폭동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이라는 주장을 한 바도 있고 북한군 개입설을 부인한다. 그의 주장 일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맞다.

 

유증선의 주장을 토대로한 조갑제의 주장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報國 滅私奉公이라는 혈서를 썼다는 주장은 문경 보통학교(문경 서부공립 심상소학교) 동료교사였던 유증선의 증언에 기초한다.

 

유증선의 증언 내용

군관학교 입학을 위해 ①호적에 1살 낮게 고치기. ②혈서 작성

①호적에 1살 낮게 고치기.
1938년 5월경이라고 생각된다. 숙직실에서 같이 기거하면서 솔직한 이야기를 서로 털어놓을 때였다. 박 선생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아무래도 군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제 성격이 군인 기질인데 문제는 일본 육사에 가려니 나이가 많다는 점입니다. 만주군관학교는 덜 엄격하다고 하지만 역시 나이가 걸립니다.”
  
  박 선생은 호적상의 나이를 고치기 위한 방도를 이야기하면서 형 박상희에 대해서도 주섬주섬 말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존재에 비해서 형은 굉장한 사람이라는 의식을 깔고 하는 말이었다. 
  
  “우리 형님은 지금 고향에서 면장을 하고 있소. 성격도 활달하시고, 저는 이렇게 작고 보잘 것이 없지만 형님은 체격이 크고 외모도 훤칠하시지요. 저는 형님을 존경합니다.”
  
  나는 박 선생에게 “그러면 그 형님의 도움을 받아서 호적을 고칠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박 선생은 며칠동안 고향에 다녀와서 나이를 고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한 살 낮추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실제 사실 : 호적을 고치지 않았다.


②혈서 작성
나와 박 선생은 숙직실에서 밤새 고민했다. 우리가 연구한 것은 ‘어떻게 하면 만주군관학교 사람들이 환영할 수밖에 없는 행동을 취할 것인가’였다. 
  
  내가 문득 생각이 나서 “박 선생,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면 어떨까”라고 했다. 그는 즉각 찬동했다. 즉시 행동에 옮기는 것이었다. 바로 옆에 있던 학생 시험 용지를 펴더니 면도칼을 새끼손가락에 갖다 대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설마 했는데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는 것이었다. 박 선생은 핏방울로 시험지에다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고 썼다.

 

그는 이것을 접어서 만주로 보냈다. 그때 편지가 만주까지 도착하는 데는 1주일쯤 걸릴 때였다. 한 보름이 지났을까, 누군가가 만주에서 발행되는 신문에 박 선생 이야기가 실렸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 혈서가 신문에 보도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때 만주에 가 있던 대구사범 교련주임 아리카와 대좌가 도와줘서 그 혈서건이 신문에 났는지, 아니면 만주군관학교에서 신문에 자료를 제공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아리카와가 보낸 편지가 박 선생 앞으로 도착했다. 
    박 선생은 “아리카와 대좌가 그렇게 군인이 되고 싶으면 자기에게 한번 다녀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 며칠 뒤 박 선생은 만주에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아리카와를 만난 모양이었다. 그는 옆구리에 《동양사》 등 몇 권의 책들을 들고 왔는데 “한번 시험을 쳐보라고 했으니 해볼 수밖에 없지”라고 했다.


내 아들 柳浩文(유호문·전 건설부 산업입지국장)은 1939년에 문경보통학교에 입학했는데 담임선생은 박 선생이었다. 이 해 가을(1939년)에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에 입학 시험을 쳤다.

 

==> 실제 사실 : 혈서가 만주까지 가는데 1주일 걸린다고 하였으니 38년 5월에 만주지역의 어떤 신문에 보도가 되었을 것이다. 만주일보 어디에도 그런 기사는 없다. 또한 만주일일신문에도 나와있지 않다.

 

1938년 5월에 혈서를 작성했다고 하는데, 1기 입학 시험은 38년 10월에 있었다. 모집요강이 시험보다 5개월이나 앞서 있었다는것이 의문스럽다. 
1938년도 1기 가을 시험 응시도 아니고 그 다음 해에 치룰 입학청원 편지를 썼다는 증언은 의아할 따름이다. 1939년도 만주군관학교 입학시험일자는 10월3일로 아직 시험공고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1년 훨씬 전에 입학청원 혈서를 보냈다는 것은 상식선에서는 맞지 않다.
 

만약 박정희가 혈서를 썼고, 만주에서 발행된 신문에 보도 되었다면 만주로 가기 전에 남로당에 의해 암살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박정희가 귀국하자마자 남로당이 VIP 특별대우를 하며 박정희를 추종하였겠는가?

 

박정희가 아직 만주에 있었을 때도 광복군이 달려와 그를 광복군 중대장으로 영입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만주에서의 박정희의 행적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등소평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중국 최고 영웅으로 추대하였을 리 있겠는가?

 

적어도 그런 특이한 사건이 발생했다면 만주국의 선무공작 차원에서 보도자료 배포를 통해 당시 만주 여러 언론에 보도되었을 것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늦어도 1주일 이내에 조선에서 발행하는 신문들도 단 한 줄이라도 언급했을 것이다. 또한 독립운동세력들의 지탄으로 인해 풍문이 돌았을 것이지만 혈서사건은 야사에도 전하지 않는다. 일본으로서도 상징적 사건이었기에 정부차원에서 기록에 남겼을 것이지만 아직까지도 증명되지 않고 있다.

 

다른 증언:
정용진이 쓴 '청년 박정희'에 의하면 박정희는 1939년에야 고향선배 상위 강재호의 조력을 받아 입학 청원편지를 썼다고 한다. 당시 군관학교 입학응시 자격은 4년제 중학교 졸업자면 됐기에 박정희는 사범학교를 졸업한데다가 교련이수로 하사관 계급이 주어졌음으로 나이제한 기준초과를 용납해 줬을 것으로 보는게 더 설득력이 있다.

 

변성환이 쓴 '대통령 박정희'(어린이 인물전기)에서는 아라카와 대좌의 추천으로 입학하였다고 나와있다.


증언.png


지금까지 혈서라는 허위 사실의 2가지 근거가 되는 민족문제연구소 혈서와 조갑제 혈서를 검증하여 보았다.

2가지 주장 모두 소설에 가까운 내용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실적 근거가 전혀 없다.

 

결론은 박정희 혈서는 조작된 사실이며 허위이다.



?Who's 텅날개

profile

All truth passes through three stages. First, it it ridiculed. Second, it is violently opposed. Third, it is accepted as being self-evident. - Arthur Schopenhauer -

모든 진실은 3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째는 조롱이고, 둘째는 거센 반발이며, 셋째는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 


All the people needed to make them happy was food and entertainment and "BREAD AND CIRCUSES" that have been used by a corrupt politician on democracy.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3 신이 공대생을 만들었을때   [레벨:1]id: 도너츠도너츠 2013.12.15 9673
202 어떤 디자이너의 고양이 찾기 광고 ㅎㅎ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2013.12.08 8379
201 여고생의 회뜨기 실력 ㄷ ㄷ ㄷ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2013.12.07 8439
200 IPAD MINI CASE: BLUE DENIM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2013.08.27 9919
199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20대 여성의 글 [1]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2013.08.25 8889
198 크레용팝 ㅎ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2013.07.08 7793
197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 중국의 암담한 현재와 미래 백마탄공주님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2013.06.05 7576
196 나에게 朴正熙를 설명해 주는 中國人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2013.06.02 6488
195 뾰로롱 꼬마빌리 [1]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2013.05.27 7872
194 인간극장 레전드 - 조병만 할아버지 강계열 할머니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2013.05.26 9416
193 중구난방_계피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2013.05.19 8600
192 구글맵 위도 경도 검색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2013.05.16 8226
191 구글 데스크탑 32비트 64비트 파일 [1]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2013.02.11 11105
190 말기암 치료 방법:거슨 요법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2013.02.09 12352
» 박정희가 천황을 위해 혈서를 쓰다?!  image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2013.02.05 8995
188 해외 여행시에 꼭 가져가셔야 할 필수품..MMS 이제는 오염된 물이나 환경으로 인한 전염병이나 황토병에 걱정안하셔도 될 것 같아요. 꼭 유용한 정보 되시길..  fileimage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2013.02.01 9452
187 [윤칼세 폭로]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18년 동안의 친.인척 비리!!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2012.12.25 8327
186 유신독재에 대한 임영자님의 의견  fileimage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2012.12.06 10109
185 박정희=오카모토 미노루’ 는 북한에서 시작된 네거티브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2012.12.05 10124
184 박정희 혈서문제에 대한 네티즌 썰 (확인 필요) [1]  fileimage [레벨:14]id: 텅날개텅날개 2012.12.05 11133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Next ›
/ 11
Designed by hikaru1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