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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의 이상한 기록들 - 종합완결 -
(서프라이즈 / 우리역사 / 2012-2-13 12:31)




1. 기존 시각 : 조선은 명의 사대 제후국이었다.

반론 : 조선은 사이(동이, 서융, 남만, 북적)를 모두 거느린 천자(황제)국이었다.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신종호(申從濩) 등이 상소(上疏)하였는데, 대략에 이르기를, “선왕(先王)이 사이(四夷)를 통치하시면서
공물[貢]을 바치지 않으면 명분을 닦고 왕(王)으로 여기지 아니하면 문덕(文德)을 닦는다 하였으니, 그 신중함이 이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만둘 만한 것을 그만두지 않고 위험을 꾀하고 요행을 바라면서 금수(禽獸)같은 무리와 이기고 지는 것을
비교한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 성종 252권


-------------
(주: 위 내용이 정말로 조선왕조실록에 있는지 확인해 보았더니....정말로 있네요.
성종실록 > 성종 22년(1491년) > 성종 22년 4월 > 성종 22년 4월 28일
성종 252권, 22년(1491 신해 / 명 홍치(弘治) 4년) 4월 28일(계유) 3번째기사 
북방 정벌에 반대하는 대사헌 신종호 등의 상소문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Tree=0&id=kda)
-------------


조선의 세조가 사이(동이, 서융, 북적, 남만)를 모두 다스렸다는 기록이다. 사이는 사해(四海), 사방(四方)과 같은 의미로, 사이를 다스리는 이는 곧 천자(황제)다.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都節制使) 곽연성(郭連城)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야인(野人)과 왜인(倭人)들은 모두 우리의 번리(藩籬)이고, 모두 우리의 신민(臣民)이니, 왕(王)된 자는 똑같이 대우하고 차별을 없이 하여 혹은 무력(武力)을 사용기도 하고, 혹은 성식(聲息)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작은 폐단 때문에 그들의 내부(來附)하는 마음을 거절하여 물리칠 수가 없다. 내가 즉위(卽位)한 이후에 남만(南蠻)·북적(北狄)으로서 내부(來附)하는 자가 심히 많은데, 모두 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니, 이것은 하늘의 끌어들이는 바이지, 나의 슬기와 힘이 아니다. - 세조 8권


--------------
(주:  세조 3년(1457년) > 세조 3년 7월 > 세조 3년 7월 29일
세조 8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7월 29일(경인) 2번째기사 
곽연성에게 내부해 오는 야인들에 대한 지대방략을 주다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Tree=0&id=kda)
-------------------


야인과 왜인, 남만과 북적이 모두 조선의 번리 즉 속지라는 기록으로, 조선임금이 천자(황제)였던 것이다.


조 참판(吏曹參判) 최항(崔恒)이 공신 연곡(功臣宴曲) 4장(章)을 지어서 올렸으니, 그 1장에 이르기를, “거룩하도다,
상제(上帝)시여! 동국(東國)을 사랑하여 편안케 하시고, 힘써 돌보시고 사랑하시어 이 땅을 봉건(封建)하여 복(福)되게 하셨네.
아아, 거룩하신 성조(聖祖)께서 대명(大命)을 받으시고 큰 기업(基業)여시어 성대(盛大)한 공업(功業)은 다툴 바 없으리.
천명(天命)을 받으시어 이미 굳건히 하시고 모책(謀策)을 베푸시어 드리우시니, 우리 홍조(洪祚) 길이길이 창성(昌盛)하오리다. 대대로 명철(明哲)하신 임금님 나시어 그 황업(皇業) 잇고 이으시니, 안으로 다스리고 밖으로 물리쳐서 하룻 만에 바로 곧 사방(四方)이 안정되고, 멀고 가까운 데가 모두 편안하여졌도다. 음악(音樂)이 화(和)하고 예절(禮節)이 밝으니, 빛나는 문화(文化)가 융평(隆平)하게 열렸도다.” - 단종 12권

조선의 임금이 황업(皇業) 즉 황제(皇帝)의 업무(業務)를 대대로 이어 왔다고 기록했으며, 사방(四方) 역시 거론되고 있다.



2. 기존 시각 : 
조선은 사대 제후국이므로 명에 당연히 조공하였다.

반론 : 
조선은 조공을 받는 천자(황제)국이었다. 당시의 국제 질서에서 조공을 하는 제후국이나 번국은 두 나라를 섬길 수 없으며, 조공을 받을 권리도 없다.

자바국[爪蛙國] 아열(亞列) 진언상(陳彦祥)이 사자를 보내어 토물을 바쳤으니, 유구(琉球)의 별종(別種)이었다. - 태조 23권

유구 국왕(琉球國王) 찰도(察度)가 사신을 보내어 전(箋)을 받들고 방물을 바치고, 또 왕세자(王世子)에게 예물을 바쳤다. - 정종 6권

섬라곡국(暹羅斛國)에서 그 신하 내(乃) 장사도(張思道) 등 20인을 보내어 소목(蘇木) 1천 근, 속향(束香) 1천 근과 토인(土人) 2명을 바치니, 임금이 두 사람으로 하여금 대궐 문을 지키게 하였다. - 태조 3권



3. 기존 시각 : 
조선과의 관계에서 왜 혹은 일본은, 서로 대등하거나 독립된 나라였다.

반론 : 
일본은 조선에 복속된 국가(?)였으며, 왜는 제대로 된 국가도 형성되지 않은 미개한 족속들이었다. 일본과 왜는 나란히 조선에 조공하였다.

왜인(倭人) 정대량(井大良) 등 3명이 와서 토물(土物)을 바쳤다. - 문종 9권

기남보국(紀南寶國)의 객인(客人)이 와서 토물(土物)을 바쳤으니, 왜놈[倭奴]의 별종(別種)이었다. - 태종 11권

왜구는 당연히 조선에 조공하며,

일본 좌경 대부(左京大夫) 육주목(六州牧) 의홍(義弘)이 구주(九州)를 쳐서 이기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방물(方物)을 바치고, 또 그 공적을 말하였다. 임금이 의홍(義弘)에게 토전(土田)을 하사하고자 하다가, 첨서중추원사(簽書中樞院事) 권근(權近)과 간관(諫官)의 의논으로 그만두었다. 의홍이 청하기를, “나는 백제의 후손입니다. 일본 나라 사람들이 나의 세계(世系)와 나의 성씨(姓氏)를 알지 못하니, 갖추 써서 주시기를 청합니다.” - 정종 2권

일본은 백제계와 왜구가 병존한 조선의 번리 속지에 불과했다.



4. 기존 시각 : 
일본은 역사 내내 동북아의 열도에만 있었다.

반론 : 
일본과 왜의 조선에 대한 조공 품목에는, 열도에서 서식하지 않는 열대 기후의 동물 원숭이와 코끼리 등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였다. 역사에서의 조공 관례는 그 나라나 지역의 토물이나 특산물이 주요 품목이었다. 즉 일본과 왜의 왜구들이 일본열도로
이주하기 이전에는 원숭이와 코끼리 등이 서식하는 더운 지역에 위치했었다는 것이다.


원숭이[猿?]를 각진(各鎭)에 나누어 주었다. 이보다 앞서 일본국(日本國) 사람들이 잇달아 원숭이를 바치므로, 명하여 사복시(司僕寺)에 기르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나누어 주었다. - 태종 19권

일본국 축전주(筑前州)의 등원정청(藤源定淸)이 사람을 보내어 원숭이를 바쳤다. - 세종 113권

일본 국왕(日本國王) 원의지(源義持)가 사자(使者)를 보내어 코끼리를 바쳤으니, 코끼리는 우리나라에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명하여 이것을 사복시(司僕寺)에서 기르게 하니, 날마다 콩 4·5두(斗)씩을 소비하였다. - 태종 21권



5. 기존 시각 : 
고려의 무신 이성계는 좁은 한반도만의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4불가론을 외치며 한반도의 위화도에서 말머리를 돌린 인물이며, 한반도 내에서 활약한 무장이다.

반론 : 
고려의 무신이자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는 고려 군사는 물론, 막대한 숫자의 여진 군사까지 이끌며 고려의 서쪽과 동쪽 모두를 정벌한 무장이었다.

동북면 1도(道)는 원래 왕업(王業)을 처음으로 일으킨 땅으로서 위엄을 두려워하고 은덕을 생각한 지 오래 되어, 야인(野人)의 추장(酋長)이 먼 데서 오고, 이란 두만(移?豆漫)도 모두 와서 태조를 섬기었으되, 언제나 활과 칼을 차고 잠저(潛邸)에 들어와서 좌우에서 가까이 모시었고, 동정(東征)·서벌(西伐)할 때에도 따라가지 않은 적이 없었다. 여진(女眞)은
알타리 두만(斡朶里豆漫) 협온 맹가첩목아(夾溫猛哥帖木兒)·화아아 두만(火兒阿豆漫) 고론 아합출(古論阿哈出古論阿哈出)·탁온
두만(托溫豆漫) 고복아알(高卜兒閼)·합란 도다루가치(哈?都達魯花赤) 해탄가랑합(奚灘訶郞哈)·삼산 맹안(參散猛安)
고론두란첩목아(古論豆?帖木兒)·이란 두만 맹안(移?豆漫猛安) 보역막올아주(甫亦莫兀兒住)·해양 맹안(海洋猛安)
괄아아화실첩목아(括兒牙火失帖木兒)·아도가 맹안(阿都哥猛安) 오둔완자(奧屯完者)·실안춘 맹안(實眼春猛安) 해탄탑사(奚灘塔斯)·갑주
맹안(甲州猛安) 운강괄(雲剛括)·홍긍 맹안(洪肯猛安) 괄아아올난(括兒牙兀難)·해통 맹안(海通猛安) 주호귀동(朱胡貴洞)·독로올
맹안(禿魯兀猛安) 협온불화(夾溫不花)·간합 맹안(幹合猛安) 해탄설렬(奚灘薛列)·올아홀리 맹안(兀兒忽里猛安)
협온적올리(夾溫赤兀里)·아사 맹안(阿沙猛安) 주호인답홀(朱胡引答忽)·인출활실 맹안(?出闊失猛安) 주호완자(朱胡完者), 오롱소
맹안(吾籠所猛安) 난독고로(暖禿古魯)·해탄발아(奚灘?牙), 토문 맹안(土門猛安) 고론발리(古論?里)·아목라
당괄해탄고옥노(唐括奚灘古玉奴)이며, 올랑합(兀郞哈)은 토문(土門)의 괄아아팔아속(括兒牙八兒速)이며, 혐진 올적합(嫌眞兀狄哈)은
고주(古州)의 괄아아걸목나(括兒牙乞木那)·답비나(答比那)·가아답가(可兒答哥)이며, 남돌 올적합(南突兀狄哈)은
속평강(速平江)·남돌아라합백안(南突阿刺哈伯顔)이며, 활아간 올적합(闊兒看兀狄哈)은 안춘(眼春)·괄아아독성개(括兒牙禿成改) 등이
이것이다. 임금이 즉위한 뒤에 적당히 만호(萬戶)와 천호(千戶)의 벼슬을 주고, - 태조 8권

고려의 무신이자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가 거느린 군사의 수는 막대한 것이었고, 그 군사에는 북방의 야인과 여진군도 헤아릴 수없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성계는 한반도 내에서만 활약한 무장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고려의 동쪽과 서쪽도 정벌했다고 기록했다. 고려의 동쪽은 어디란 말인가? 한반도의 동쪽인 일본열도를 말한 것인가? 그렇다면 고려가 동쪽의 일본열도를 정벌했다는 것인가? 아니다. 아래의 기록을 보면,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로 막혀 있고 북쪽은 옛 거란(契丹)의 땅과 접하였고 동쪽은 금(金)나라와 맞닿았다. 또한 일본(日本), 유구(琉球), 탐라(耽羅), 흑수(黑水), 모인(毛人) 등의 나라와 땅의 경계가 서로 맞물려 있다. - 고려도경

고려의 동쪽에 금나라가 있었다는 놀라운 기록이다. 한반도가 고려의 전부라는 보편적 사관과 전면 배치되는 기록이지만, 이는 이성계가 고려의 동쪽을 정벌했다는 실록의 기록과 전면 부합되는 기록일 뿐이다.



6. 기존 시각 : 
명나라는 건주위 등을 설치해 북방의 여진족 등을 통제했다.

반론 : 
건주위 등의 북방 여진족은 조선에 조공하였으며 그 수는 막대하였다.

건주위(建州衛) 지휘(指揮) 맹가첩목아(猛哥帖木兒)가 사자를 보내어 토물(土物)을 바쳤다. - 태조 19권

오도리(吾都里) 천호(千戶)·골간 올적합(骨看兀狄哈)·건주위(建州衛) 백호(百戶) 각각 1인이 와서 토물(土物)을 바쳤다. - 태종 27권

건주위(乾州衛) 이만주(李滿住), 좌위(左衛) 동산(童山), 우위 도독(右衛都督) 동나랑지(童羅郞只) 등이 각각 사람을 보내어 와서 토물(土物)을 바치었다. - 세조 3권



7. 기존 시각 : 
조선은 한반도 3천 리에만 머물러 있는 변방 소국이었다.

반론 : 
조선의 함경도는 도 하나만 2천 리가 넘었다.

평안도 동쪽에 있는 백두산의 큰 맥이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하늘을 자른 듯이 끊어져서 산등성이가 되었다. 산등성이 동쪽이 바로 함경도로 옛 옥저 지역이다. 남쪽은 철령이 한계이고, 동북쪽은 두만강이 한계이다. 남북의 길이는 2천 리가 넘으나, 동서로는 바다에 접해 있어 1백리도 못 된다. - 팔도총론 함경도편



8. 기존 시각 : 
한반도의 황해 지역은 경기 지역의 정북에 위치한다.

반론 : 
조선의 황해 지역은 경기 지역의 정북이 아닌 정서에 위치하였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우리 태조 강헌대왕이 하늘의 밝은 명을 받아 한양에 도읍을 정하셨고 열성이 서로 이으니, 강토가 날로 개척되어 8도로 정하였으니 사방의 복판에 처한 것을 경기라 하고, 서남을 충청, 동남을 경상, 남쪽에 치우친 것을 전라, 정동을 강원, 정서는 황해, 동북은 영안(함경), 서북은 평안이라 하였습니다. 경이 둘이고, 부가 넷, 대도호부가 넷, 목이 스물, 도호부가 마흔 넷, 군이 여든 셋, 현이 백 일흔 셋이니 안팎 산하의 세로와 가로가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 동국여지승람

한양 전면에는 큰 강이 막았고, 오직 서쪽으로 길 하나가 황해도와 평안도로 통하게 되어 있다. - 팔도총론 경기도편



9. 기존 시각 : 
조선의 도성은 한반도의 서울이었다.

반론 : 
조선의 도성에는 대낮에 야생표범이 드나들었는데, 한반도에서는 야생표범이 서식하지 않는다.

표범이 삼현(三峴)에 들어왔으므로 군사를 시켜 잡았다. - 태종 2권

표범이 한경(漢京)의 개천(開川)에 들어오니, 저자 사람들이 모여서 이를 잡아서 병조에 바쳤다. - 태종 35권

한낮에 표범이 도성에 들어와
개천(開州)으로부터 달아나 안국방(安國坊)의 평양군 조대림(趙大臨)의 집 원림(園林)에 이르렀다. 원금(元金) 등 네 사람이
잡아 바치니 물건을 차등 있게 주고, 인하여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해괴제(解怪祭)를 행하였다. - 세종 68권



10. 기존 시각 : 
조선의 평양은 한반도에 있었다.

반론 : 
조선의 평양은 낙타가 서식할 수 있는 기후였다.


장이 서신을 보냈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독두둔리(禿頭屯里)의 우리 발아인(撥兒人) 네 사람이 해주 병마(兵馬)에게 죽음을
당하였고, 또 황주 영병군(領兵軍)에게 우리 발아인이 대적하다가 다섯 사람이 상처를 입고 말 두 마리가 죽었습니다. 또 평양에 놓아 먹이던 10마리 낙타와
1천여 마리 말과 말을 보는 병정(兵丁) 및 귀순한 고려인(高麗人)이 또 잡혀갔습니다. 그 뒤에 낙타와 말을 요구하였는데
지급해주지 아니하였고, 새로 온 서쪽 오랑캐 3만 5천 명이 의주(義州) 등지에 주둔했는데 앞의 사정을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
인조 15권


11. 기존 시각 : 
조선은 한반도만이 영토의 전부이므로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 기후의 나라다.

반론 : 
조선의 전라도는 한 겨울에도 따뜻해 초목이 자랄 수 있었고, 조선의 각 지방에는 열대 기후의 동물인 물소 등이 서식할 수 있는 더운 지역도 있었다.

의금부(義禁府)에서 아뢰기를, “김자송(金自松) 등이 몰래 바다를 건너 해랑도(海浪島)에 들어가 물소[水午]를 잡아 가
죽과 고기를 싣고서 온 죄는 율(律)이 참부대시(斬不待時)에 해당합니다.” 하니, 명하여 이를 의논하도록 하였다.
윤필상(尹弼商)·이극배(李克培)·노사신(盧思愼)·한치형(韓致亨)·정문형(鄭文炯)·유지(柳?)가 의논하기를, “이 앞서
김비라(金飛羅) 등을 감사(減死)28273) 하였는데, 지금 김자송의 죄는 그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청컨대 감사(減死)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가하다.” 하였다. - 성종 296권

각도 감사에게 글을 내리기를, “우리나라에서 물소[水牛]를 많이 기르는데 밭갈이에 익숙하지 못하니 실용에 도움될 것 같지 않다. 각 고을에서 농구를 갖추어 갈기를 익혀 보게 하여, 밭갈이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 아뢰라.” 하였다. - 연산 24권

그러나 여덟 고을은 모두 지역이 서울에서 아주 멀고 남해와 가까워, 겨울철에도 초목이 시들지 않고 벌레가 움츠리지 않는다. 산 아지랑이와 찌는 듯한 바다 기운으로 장기가 있으며, 또 일본과 아주 가까워 땅은 비록 기름지나 살기 좋은 지역은 아니다. - 팔도총론 전라도편



12. 기존 시각 : 
조선의 종교(?)는 유교가 우세한 가운데 불교 정도만이 병존했다.

반론 : 
조선에는 회교(이슬람교)와 회교도, 회교인도 있었다.

“회회교도(回回敎徒)는 의관(衣冠)이 보통과 달라서, 사람들이 모두 보고 우리 백성이 아니라 하여 더불어 혼인하기를 부끄러워합니다. 이미 우리나라 사람인 바에는 마땅히 우리나라 의관을 좇아 별다르게 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혼인하게 될 것입니다. 또 대조회(大朝會) 때 회회도(回回徒)의 기도(祈禱)하는 의식(儀式)도 폐지함이 마땅합니다.” 하니, 모두 그대로 따랐다. -세종 36권

조선에는
회교도(이슬람교도)가 있었으니 세종은 이들과 조선인의 혼인정책을 추진했었으며, 또 조선에서의 회회교의 비중이 어떠했는지 몰라도
대조회 때 회회식 기도 의식까지 행했을 정도라고 하는데, 한반도에는 어떠한 회교적 문화도 남아 있지 않다.


각에서는 왕정시대에는 민족의 개념이 없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건 문명사가 뒤떨어진 구라파 등에서나 적용되는
이론이다. - 실제 구라파 지역은 민족이란 개념이 별로 없었다. 18세기 이후 즉, 프랑스혁명과 자본가들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나폴레옹 이후 민족의식이란 것이, 역설적이게도 구라파 내에 확산되었다. - 물론 현대 국민국가의 개념과는 그 차이점이 있었겠지만 저
위의 기록처럼 조선의 백성들은 회회인과의 혼인정책을 거부해 온 것을 보면, 민족의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중국(중앙조정) 지역에는 조선인이, 변방에는 여러 이(夷)족들이 복속되어 있었으리라.

임금이 면복(冕服) 차림으로 왕세자와 백관을 거느리고 망궐례(望闕禮)를 거행한 다음에, 강사포(絳紗袍)를 입고 원유관(遠遊冠)을 쓰고서, 인정전(仁政殿)에 납시어 조하(朝賀)를 받았는데, 올량합(兀良哈)·올적합(兀狄哈)·회회 승도(回回僧徒)들도 또한 하례에 참석하였다. - 세종 27권

조정의 궁중 행사에 울량합·울적합 등의 여진인(?)과 회회교도 등 여러 이(夷)족들도 대거 참여하였는데, 이는 한반도만의 작은 조선이라고 믿기는 힘들다.



13. 기존 시각 : 
한반도에만 한정되었던 조선의 북변은 여진 지역이었다.

반론 : 
태조 재위 시 조선의 북변은 여진뿐만 아니라 달단과도 접해 있었는데, 오늘날 달단의 땅은 러시아 볼가강 일대에 있다.

“북계(北界)는 여진(女眞)과 달단(??)과 요동(遼東)·심양(瀋陽)의 경계와 서로 연해 있으므로 실로 국가의 요해지(要害地)가 되니, 비록 아무 일이 없을 시기일지라도 반드시 마땅히 군량을 저축하고 군사를 길러 뜻밖의 변고에 대비해야 될 것입니다. - 태조 1권



14. 기존 시각 : 
조선은 한반도에만 한정되며 청의 수도는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북경이다.

반론 : 
조선에서 청의 수도인 북경은 뱃길로 3만 리나 떨어진 먼 곳에 있었다.

“영국에서 북경까지는 몇 리나 되며, 우리나라까지는 몇 리나 되는가?” “북경과의 거리는 약 7만 리인데, 수로(水路) 4만 리에 육로 3만 리이며, 귀국과의 거리는 수로로 7만 리입니다.”
“너희 나라에서 우리나라까지 길이 먼데, 그 사이에 몇 개의 나라를 지나왔는가?” “크고 작은 나라가 있습니다. 작은 나라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큰 나라로 하나는 법란(法蘭 프랑스), 둘은 품송(品松 프로이센), 셋은 아라사(鵝羅斯 러시아), 넷은
오지리아(奧地里亞 오스트리아)입니다.” - 연원직지 1권

영국에서 청의 북경까지가 수로로 4만 리, 영국에서 조선까지 수로로 7만 리라는 기록이다. 다시 말하면 청의 북경에서 조선까지 수로로 약 3만 리인데, 오늘날의 중국 북경에서 한반도의 수로는 3천 리 안팎의 거리다.

청이 오늘날의 동아시아대륙이 아니고 조선 역시 한반도만으로 한정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추가적인 기록을 보면,


들의 사정을 자세히 물었더니, 그가 갑군(甲軍)으로서 지난해에 남방의 싸움터에 따라갔는데 남군이 패한 체하고 북군을 유인하여
협격해서 북군이 전멸하고 왕자(王子) 한 사람이 죽었으며, 남군은 태반이 보졸(步卒)인데 철갑으로 머리와 몸을 싸고 손에는 큰
칼을 들고 몸을 굽히고 곧바로 달려가 말의 다리만을 찍으며 선봉에는 코끼리를 탄 자가 많이 있었다 합니다. 광녕(廣寧)부터 산해관(山海關)까지
유민이 잇달았는데 가는 곳을 물었더니, 다들 심양(瀋陽)에 이주한다 합니다. 한인(漢人) 정고동(鄭高同)이라는 자가
관소(館所)에 들어왔기에 명나라의 형세를 물었더니, 청나라가 이미 남경(南京)을 차지하였다고 소문났으나 소주(蘇州)·항주(杭州)일
뿐이며 명나라에서 통용시키는 돈에는 융리(隆理) 연호를 새겼다 합니다.” - 효종 14권

현재의
산해관, 그러니까 하북성 주위에서 벌어진 청과 명의 실제 전투에서 청군 측에 코끼리 부대가 동원되는데, 하북성 주위에는 코끼리가
서식하지도 않고 서식할 기후도 못 된다. 보편적 사관에서 청은 동북3성 일대에서 일어나 남진하였다는데, 그렇다면 동북3성 지역에서
코끼리를 사육했었다는 것인가? 이 역시 불가능하다. 조선에서 수로로 3만 리나 떨어져 있다는 청은 동아시아대륙에 있었던 나라가
아닌 것이다.



15. 기존 시각 : 
명(明)대 이후인 14~15세기 몽고제국은 멸망하였다.

반론 : 
몽고제국은 청의 강희제 재위기(1661∼1722)인 18세기까지 존속하였으며, 18세기까지만 해도 러시아(악라사)는 몽고의 일부였다. 오늘날 몽고와 관련된 역사는 거짓투성이다.

강희(康熙) 말기에 흑룡강 북쪽의 몽고를 가장 염려하여
다시 백도눌 장군(白度訥將軍) 한 명을 더 배치하였다 한다. 몽고의 48개 부족 가운데서 동북 지방에 거주한 족속이 가장
강성하여 대비달자(大鼻?子)는 흑룡강 북쪽에 있다. 그리하여 동쪽으로 흑룡강에서부터 장성 밖에까지 북쪽이나 서쪽이 모두 몽고의
영토이며, 그 넓이는 중국의 몇 갑절이나 된다. 서로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으며 동ㆍ서ㆍ남ㆍ북의 황제라고 부른다. 황태극(黃太極)과 청태극(靑太極)은 중국 서남쪽에 있으며, 액라사(厄羅斯)라는 것은 곧 대비(大鼻)이고, 객이객(喀爾喀)이라는 것은 동북쪽에 있다고 한다. - 성호사설 1권



16. 기존 시각 : 
몽고제국의 몽고인은 오늘날 몽고인의 조상으로 황인종이었으며, 고비사막 주변인 오늘날의 몽고지방 일대에서 발원하였다.

반론 : 
몽고는 색목인(色目人,백인종)의 나라였으며, 오늘날의 몽고는 역사에서 말한 몽고가 아니다. 실제의 몽고는 오늘날 러시아(악라사)의 방계 일족으로 러시아 지역에서 발원하였다.

몽고인은 청인과는 아주 다르게 생겼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푸르며 수염이 붉다. 그리고 모두 사납고 거칠며 집에서 살지 않는다. 아주 추운 때라도 단지 수레 위에 장막을 치고 길에서 자며 아침에는 눈을 털고 일어난다. 배가 고프면 다만 낙타의 고기를 먹을 뿐이고 또 개와 한 그릇에 먹는다. 강한(强悍)하고 추악(醜惡)하기가 이와 같기 때문에 청인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천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꾸짖고 욕할 때, 그를 몽고 사람에게 비교하면 반드시 불끈 성을 내고 큰 욕이라고 하니, 몽고인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 문견잡기

대비달자(大鼻?子)는 곧 아라사[鄂羅斯]인데, 몽고(蒙古)의 별종(別種)으로 나라가 사막(沙漠) 바깥 지극히 먼 땅에 있다. 그들은 키가 크고 몸이 건장(健壯)하여 상모가 극히 흉한(凶悍) 영악(獰惡)하다. 눈은 푸르고 광대뼈가 튀어나왔으며 코가 주먹같이 높고 붉은 수염이 텁수룩하게 났다.
그리고 모두 몇 사람을 합한 것같이 힘이 세다. 사람이 있어도 오줌을 누며 부녀자를 피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데 입으로 연기를
뿜지 않고 코로 내보낸다. 모두 코가 크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대비달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청인들은 극히 두려워하여
방수(防守)하기를 극히 엄하게 한다. 출입할 때에는 갑군(甲軍)이 반드시 따라다니나 오히려 제재하지 못한다. - 문견잡기

악라사(鄂羅斯)는 대비달자국(大鼻?子國)이라고도 이름 한다. 그 나라는 흑룡강(黑龍江)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중국과 교통하여 상인이 해마다 온다. 관소는 옥하관(玉河館)의 곁에 있다. 그 나라 사람은 검은 얼굴, 높은 코에
천성이 사나워서 흔히 거리에서 사람을 죽인다. 그래서 건륭(乾隆) 때 그중의 몇 사람을 찢어 죽이게 하였더니, 그 뒤부터 자못
두려워하여 규칙을 지킨다고 한다. 청인은 그들을 천하게 여겨 개돼지로 대우한다. 그 나라에서 나는 석경(石鏡)이 가장 좋다. -
계산기정 5권

몽고(蒙古)는 곧 원(元) 나라의 유종(遺種)으로 예전의 달단(?? 타타르)이다.
동쪽은 흑룡강(黑龍江)으로부터 서쪽은 바다에 이르고 북은 장성(長城) 밖을 따라 영고탑(寧古塔) 근처에 이르는 사이가 모두
그들의 소굴이다. 우리들의 역로(歷路)로 말하면 산해관 이동은 몽고 지방이 가장 가까운데 큰길에서 먼 것이 50리에 불과하다. -
문견잡기

몽고(=
달단), 악라사(러시아)는 외모와 특성과 생활 면모 대부분이 비슷하며, 역사에서 말한 몽고인은 색목인(백인종)이었다. 앞서 태조
재위 시 조선의 북변이 달단과 닿았다고 기록된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로써 당시의 조선이 얼마나 강대한 나라였는지 짐작 할 수
있다.



17. 기존 시각 : 
조선은 극동의 작고 폐쇄적이며, 은둔한 나라였다.

반론 : 
조선은 스페인과 함께 16세기 해양세력의 쌍두마차인 포르투갈(포도아)을 관리하는 등 세계를 지휘하던 나라였다.

정덕(正德 : 명 나라 11대 임금 무종(武宗)의 연호, 1505~1521) 이전에 포도아(葡萄牙)의 가노(嘉奴)라는 사람이 품청(稟請)하
고 배 5척으로 동쪽으로 행하여 빙 돌아서 서쪽에 이르러 지구를 한 바퀴 돌고 갔다. 돌아가는 날에 임금이 은으로 주조한
소지구(小地球)를 하사하였는데, 그 위에 각자하여 이르기를‘처음 지구를 돌아보고 돌아간 사람이 가노이다.’하였다. 지금은 바닷길이 더욱 익숙하여 서양의 선박이 동으로부터 서로 가거나 서쪽에서 동으로 돌아 지구를 돌기도 하는데, 8~9개월이면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으니, 모두 앞사람들이 발명한 공이다. - 추측록 6권

16세기의 포르투갈인 가노가 왜 극동의 작은 은둔 폐쇄국 조선임금에게 지구항해에 관하여 여쭙고 청하였을까? 게다가 조선임금은 은으로 주조한 소지구를 ‘하사’하며 치하한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건데 분명 세계사는 다시 써져야 한다.



18. 기존 시각 : 
조선은 명·청 사대에만 매달리는 국제 정세나 국제 질서에 어두운 나라였다.

반론 : 
18세기 말까지만 해도 조선은 서구열강 영국의 조공을 받는 열려있는 강대한 나라였다.

의주 부윤 이의직(李義直)이 헌서 재자관(憲書齎咨官) 홍택복(洪宅福)의 수본(手本)을 가지고 치계하였다. 수본에 아뢰기를, “영길리국(英?唎國)은 광동(廣東) 남쪽에 있는 해외 나라로서 건륭(乾隆) 28년에 조공(朝貢)을 바쳐왔었는데 올해 또 바쳐왔고, 두목관(頭目官)으로 온 마알침(???)과 이시당동(?嘶??) 두 사람은 영길리국 왕의 친척이었으며 그들이 바친 공물(貢物)은 모두 19종입니다. - 정조 38권

조선사편
수회가 30여 년간 우리 역사서를 주물럭거린 이유가 그렇게 단순한 것이었을까? 30여년이란 세월이 얼마인데 쉬엄쉬엄 놀면서
우리에게 간편한 역사해설서 선물한 것이 그들 행각의 전부였을까? 통계청 자료에 1904년 한반도(?) 인구가 590만 명 정도로
기록되어 있는데, 기미독립 선언문 낭독 당시(1919년) 한반도(?) 인구를 2,000만 명이라 했다. 15년간 1,500만 명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우
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데, 조선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했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 아베 노부유키

“남북 간의 평화, 통일 문제를 그냥 남북 간의 문제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동북아시아에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대결은 400년 전 임진왜란 때부터 시작된 것입
니다. 그리고 근대화 물결이 밀려오면서 100년 전부터 지금까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에 아주 긴박한 대결구도가
형성되어왔습니다. 그것이 나중에 냉전의 대치선으로 바뀌기는 했습니다만 동북아 지역에서의 역사적인 대결구도가 한반도 분단의 원인으로
작용했고, 지금도 그 대결적 질서가 그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 노무현 대통령

역사는 넓고 길게 봐야 한다.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_2&uid=52350





조선왕조실록만 보더라도.....그 안에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음이 분명한데....


문제는....도대체 왜 그런 기록들이 발견되는지

그 이유에 대해 합리적이고, 체계적이며

논리적으로 치밀한 설명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는....그와같이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단지, 그런 해괴한 내용들이 있다는 문제제기만 하고 있을 뿐....


만일....한민족의 주력이 원래 중국대륙에 있었다면

도대체 어떤 연유로, 그리고 언제부터 한민족의 역사가

현재의 좁은 한반도로 찌부러져 버린 것일까?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이 중국대륙에서 발견되지 않고

왜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것일까?


한민족의 주력이 한반도로 찌부러지면서....한반도로 가지고

들어온 것일까요? 그렇다면 왜 한민족 역사의 격변 상황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 것일까요?


그리고 이성계 시절부터 시작된 조선왕조의 계속된 사대주의적 모화사상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에 대한 기록들도 조선왕조실록에

엄청나게 많은 량으로 실려 있을 것 같은데....














12.02.13. 15:28
*
제 머리속은 뒤죽박죽 되버렸네요~~







*
가장 의미심장한 것이 바로 "활"이지요..
조선은 각궁으로 유명한데 각궁의 주재료는 바로 물소뿔이지요..

그럼 조선은 물소뿔을 수입해서 활을 만들었다는 의미인데..
통상 그 지방에 자체적으로 나는 생물을 이용해 무기재료를 만드는게 상식아닐까요?
고로 조선에는 물소가 시계절 내내 자생하는 지방으로 귀결된다는....



*
그리고 위에 포르투칼과 관련해서
임진왜란을 포르투갈과 조선과의 해상무역 주도권 전쟁으로 해석한 글을 본적이 있음니다..
그리고 포르투칼은 아직도 임진왜란과 관련해 기념주화까지 만든것을 본적이 있음니다..







*
국녹을 먹는 사학자들은 잠자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땅에서 국녹을 먹는 대부분의 사학자들은
애, 어른 할것없이 깊은 잠에 빠진지 오래이고 도무지 깨어나길 싫어한다는~
이보다 더 큰 일은 자라나는 애들을 깊은 잠으로 유도한다는 것!









조선왕조 실록을 전부는 아니드라도 근대사에 가까운 쪽은 일본이 다 알아서 왜곡 시켰습니다. 저는 단편적으로
국악을 하는 사람으로써 '당악' 이라고 하는 당나라 음악을 서양음악의 7을계를 써서 버젓이 당악이라고 하는거로
둔갑시켜서 이름도 '서일화(瑞日和)라고 하여 상서로운 일본과 화합하라! 는 내용을 당악이라고.... 세종대왕이
당악은 제사지낼때만 쓰자고 하여 종묘제례악에 쓰이는데...이게 당악도 기분나뿐데 교묘히 서일화지곡 리고 해고
해서 일본놈 찬냥하는 음악으로 별절이 되었는데....이걸 저만 알아차리는지...아니면 다른놈들음 모르고 있는지....
이미 중앙대 교수중에 김기수를 친일음악가로 분류를 하는교수





는 폐암 걸렸고... 일본가서 유학하고 일본음악 갖다가 산조 만든 교수는 이명박 인수위원회 일원이고.....온 천지가
사학계뿐아니라 국악쪽은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름하여. 서일화지곡, 요천순일지곡,
헌천수.....한자로 풀어볼까요?,,,,, 瑞日和之曲, 堯天舜日之曲, 獻天壽...이거 직역이든 의역이든 한번 해보실라우....
상서로운 일본과 화합하라. 요임금의 천황이요, 순임금의일본이라.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쳐라.... 가미가제.... 이걸
국악이라고....해석을 하는데...상서로운해같은 음악, 요임금은 하늘이요 순임금은 해라. 목숨을 하늘게 바친다.....
뭐 말도 안되는 논리로 해석을 해가꼬 사람들을 우롱





하고 있고, 그밑에서 교육 받은놈들은 그대로 사대음악인 당악도 기분나뿐데 그걸 친일음악으로 만들어놓은걸
강요하고 있는놈이 지휘자라.....내가 미치지 않고 살고 있는것이 다행입니다. 짐작을 했지만, 사학계는 더 왜곡
되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식민지 역사를 가르칠려고 조선왕조 역사를 온통 명나라 식민지로 왜곡시켰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성계이 이화도 화군은 좀 공부를 해가지고 말씀 드릴수 있으나......명나라는 우리민족이었다고 합니다.
나줃에 거론하겠습니다. 중국의 명나라 지배시도 미친 사대주의자들은 당나라를 잊지못하고 당에 충성을 다하는
지금의 시대같은 비슷한 정책을 폈던걸로 압니다. ...나중에....







*
갈아야지~~







*
통일과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진 후에야 역사가 바로잡힐 것같군요.








*
좀. 미약하나 의견을 말씀드리면, 조선조 때(세조. 성종) 조공을 받는 등 하여 조선이 황제국인듯
세력이 있었다는 평가는 ..해당 실록기사를 이미지(한자)와 번역문도 보았는데요. 성종 때 四夷라는
것이 흑룡강주변 지금의 동북3성지역의 乙狄哈. 乙良哈. 李滿住. 그리고 倭人으로 4개의 조선과 근접한
세력을 말하는 것이니 조선이 明과의 交隣하는 관계와 대비하는 것과 유사하지요. 朝貢관계도 무역의
한 형태로 말하고 조선과 인접한 세력인 4개를 지배하는데 선린교류로 어루만지는..그런 소위 支待方略으로
세조나 성종이 말한 것이라 볼 것이니 명실 공히 황제국이라 할 것은 아니다. 여깁니다.









*
저도 대륙 조선사에 관한 책을 몇권읽었읍니다. 최두환교수를 비롯한 대륙조선사 연구 사학자들이
있읍니다..그분들은 보통 정통 사서라는 것들은 거의 편집되고, 왜곡되었다고 보고, 시나 그림, 같은
문학작품(문학작품은 왜곡할리가 없지요)과 특산품 같은 작은 단서로 역사를 다시 유추해내더군요..근데,
서울대 천문학 박창범교수님이 한단고기에 나오는 일식/월식을 증명해낸겁니다. ㅠㅠ 삼국이 증명되고,
고려까지는 대륙에 있었다는게 거의 증명이 되는데,,근세 조선이라...
이게 골치 아픔니다...도저히 믿겨지질 않죠..근데 최두환 교수(평생 이순신장군만 연구한 분이죠)가
난중일기를 토대로 이걸 증명해내는데,,,ㅠ





저도 많은 생각해봤는데요...서양 고지도에 보면 coree=corea같은말이죠..근데...자세히 보세요...
//core(핵.중앙.) corea= 중국...// 저같은 문외한이 이정도 보이면, 좀 아시는 분들은 오죽할까요?
대륙조선사를 주장하시는 분들은 우리가 곧 중국이다고 주장하니까...근데 아직도 확신은 안섭니다..
다만 그럴가능성은 있다! 고 판단하지요...절대 헛튼소리만은 아니니까요..(__)









core(핵.중앙.) corea= 중국.
----------------
이건 좀 무리한 상상이나 추론 같습니다.
암튼, 문제는.....한민족 대륙설(=대륙조선설)을 믿으려면
현재 한민족은 왜 한반도에 찌부러져 있는지....그리고 기타, 대부분의 사서들을
왜 한반도의 한민족이 가지고 있는지 등등이 일관성있게 설명될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전체를 체계적으로, 일관성 있게 설명할 능력이 있는 사학자가 없어 보입니다.







*
벌써, 명동에서 장충당 쪽방향으로 이동하는 미확인 비행물체만 3번을 목격했군요! ...
그비행체들의 공통점은 아주높은 고도( 90 도각도) 에서 별빛같이 이동하면서
빨간빛을내면서 사라진다는점이지요!...


*
엄청높은고도에서 낮은고도의 비행속도에견주었을때, 최소 마하 90~100 정도 예측되는군요!...
진짜 외계에서 온비행체일까요?... 아니면 어떤 나라의 인공비행체 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내눈깔이 해태눈깔일까요?

어제본 그 비행체가 혹시~ 광화문 폭발음 과 연관성이 있는것은 아날까요?...






*
막연한 생각에 우리의 역사는 여기가 아니라고 믿고 있었읍니다.
하지만 너무나 어마어마한 기록에 머리속이 혼란하고 어지럽습니다.
다만 의지가 굳어짐이 기쁩니다.
잘 보았읍니다. 그러면서 다음글을 기다립니다.






*
김구선생의 백범일지에 보면 장개석이
김구를 위로하면서 자기 고향이 옛 백제의 땅인
산동성이라고 한 대목이 나오지요
^^








*
몽골인이 색목인(백인)이었다는 건 확대해석이 아닌가 합니다.
대륙조선을 주장하는 이는 명성황후도 백인이라고 합니다.
한반도는 왜구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고 합니다.
대륙조선사에 대해서는 그 진위가 더욱 논의되어야 하지만
위에서 열거된 것은 자기부정의 양상을 띕나다. 정체성 흔들기로 보입니다.
이북에서는 대동강문명을 거론합니다. 우리는 이주해 온 민족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단군릉이 발견되었을때 주석을 비롯 매우 기뻤다 하는군요.
이주해왔다는 걸 의심했었는데 우린 이땅의 주인이었다로 결론
이북은 이것과 견주워서 대륙조선의 문제에 다른견해를 가짐





┗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이땅에서 무수하고 실증적인 역사가 있씁니다.
초기에 유림이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이어지고 이것은 실재적인 것이며
이땅은 왜인의 영향권이 아닌 독립적 지위에 있었고 문화적으로 훌륭하며 , 더 나아가 국가관이
투철했던 것을 본다면 한반도의 역사가 대륙조선의 유민에 의하여 조성된 급조된 나라는 아니라는 것 입니다.
이미 훌륭한 문화를 지니고 있었고 이 문제는 대륙조선과 연계하여 더욱 논의되어야 합니다.
경기도 양주(양근)의 서화학파(유림)에서 초기 독립운동이 주도된 것 역시 시사점이 많습니다.
김구도 서화학파와 연관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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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ruth passes through three stages. First, it it ridiculed. Second, it is violently opposed. Third, it is accepted as being self-evident. - Arthur Schopenhauer -

모든 진실은 3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째는 조롱이고, 둘째는 거센 반발이며, 셋째는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 


All the people needed to make them happy was food and entertainment and "BREAD AND CIRCUSES" that have been used by a corrupt politician on demo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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